작가소개
총 5명의 시인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김기림은 일제강점기 『기상도』, 『태양의 풍속』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편석촌이다.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1933년 김유정·이태준 등과 함께 구인회 결성에 참여했다.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등이 있다. 평론 및 저서로서 『시론』(1947), 『시의 이해』(1950) 등이 있다. 김기림은 한국 문학사에서 주지주의 시의 도입과 전체시의 주장,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 시학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김소월은 일제강점기 「금잔디」, 「첫치마」, 「엄마야 누나야」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34년에 자살했다. 1923년에 일본에 유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돈화·김억에게서 배웠으며 김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창조』, 『개벽』 등에 시를 발표했고, 김억과 함께 『영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1925년에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시론 「시혼」을 『개벽』에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민요적 율조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한국 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백석은 해방 이후 「집게네 네 형제」·「석양」·「고향」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12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장학금으로 일본에 유학, 모더니즘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했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해방 후 문학예술총동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지향적인 그의 시는 김소월과 한용운, 정지용이 다져놓은 현대 시의 기틀 위에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상은 일제강점기 「오감도」, 「이런 시」, 「거울」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1910년에 태어나 1937년에 사망했다.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3년에는 기사를 그만두고 다방을 경영하면서 문인들과 교류했고 구인회 활동을 했다. 혼인 후 일본에 갔다가 사상불온 혐의로 구속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일본 병원에서 사망했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이다.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무의식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